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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일기
글. 박용수(동신고 교사)
최근 낚시가 등산을 제치고 우리 국민이 제일 선호하는 취미가 되었다고 한다. 각종 오락프로에서 낚시를 통해 흥미로운 여가생활을 보여주어서이기도 하지만 누구에게나 한번은 인생에서 낚시할 때가 꼭 온다고들 한다.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낚시에 몰입해 있는 사람은 내적으로 평온이 100% 충족된 상태거나 자신과 치열한 갈등상태에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강을 배경으로 낚시꾼은 낚시로 한편의 시를 쓰기도 하고, 사나운 파도보다 더 격렬한 내면과 대결 중인 것이다.
  • 추강(秋江)에 밤이 드니 물결이 차노매라. / 낚시 드리오니 고기 아니 무노매라. / 무심(無心)한 달빛만 싣고 빈 배 저어 오노라.
    - 월산대군
낚시꾼은 산과 물이라는 자연 속으로 스스로 들어가 한 폭의 그림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자연을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대상과 합일하려는 사람이 낚시꾼이다. 시조에는 삼촌 예종과 동생 성종에게, 연이어 왕권이 계승되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월산의 시심이 에둘러 드러나 있다. 이처럼 조사는 낚시를 통해 자신의 내면을 잔잔한 수면처럼 평화롭게 드러내기도 하지만 그 속에 끓고 있는 내적 갈등을 견디어 내고 있는 것이다. 풍경의 일부가 되고자 하는 낚시인도 있지만 거친 비바람에 맞서 자신의 내면과 싸우는 낚시인도 적지 않다.

강호의 수심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오묘한 미지의 대상이다. 마음 또한 겉과 달리 좀체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심오한 세계이다. 겉은 멀쩡한데 소용돌이치는 강물처럼, 평온한 세계와 달리 심중에는 맑은 물과 흙탕물이 갈마들기도 하고, 뭍에 부는 태풍보다 더 격렬한 토네이도가 휘몰아치는 것이 인간이다. 낚시는 모름지기 물고기를 낚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진정한 낚시꾼 백이면 백, 고기를 낚으러 가지 않는다고들 한다. 낚시꾼은 어부(漁父)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들은 어부에 빗대는 것을 몹시 싫어한다. 강호의 시인으로 불러주길 바란다. 물고기보다 운치를 앞세운 셈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낚시꾼은 낚시꾼이다.
산사람에게 산은 늘 경외의 대상이다. 설혹 그 끝에서 얼어 죽고 떨어져 죽을지라도 산의 호명을 외면하지 못한다. 왜 오르는 것일까. 그들은 산이 좋아서가 아닌, 산이 불러서라고 한다. 운명이라는 것이다. 비록 육체는 고통스러울지라도 복잡한 마음이 솟아오른 산처럼 우뚝 세워지고 맑아진다면 기꺼이 배낭을 마다하지 않을 사람들이다. 낚시꾼도 마찬가지다. 수면 위에 도도하게 솟아오른 찌처럼 삶의 의미를 수직으로 세우고 싶은 사람들이다. 스스로 인생의 본질을 탐험해 내고 싶은 사람들, 그래서 그들은 결코 어부가 아닌 것이다.
  • 뫼에는 새 다 긋고 들에는 갈이 없다. / 외로운 배에 삿갓 쓴 저 늙은이 / 낚대에 맛이 깊도다. 눈 깊은 줄 아는가.
    - 황희
절대 고요, 적막 속에서 낚시를 드리우고 있는 정경은 일체가 정지된 한 폭의 그림이다. 물욕과 명리를 초월하여 눈이 깊이 쌓이는 줄도 모르고 낚시에 몰입해 있는 선비의 내면 풍경이 소름 돋도록 섬뜩하다. 낚시꾼들이 밤새 하는 일은 오직 한 가지, 찌를 응시하는 것이다. 찌는 밤새 응시해야 할 또 다른 자아이다.
밤이 깊으면 물속에 잠수해 있던 거대한 괴물, 즉 자아가 스르르 눈을 비비고 깨어난다. 녀석은 수줍어하거나 화를 잘 내는 괴팍한 본능들이다. 길들여지지 않는 것들을 수면 밖으로 끌어올리는 것, 거칠고 완고한 것들을 꺼내서 남몰래 부드럽고 순하게 달래는 작업, 그것이 낚시이다. 사람의 가슴 속에는 수많은 물고기가 헤엄을 치고 있다. 특히, 낚시꾼들의 몸속에는 수천, 수만 마리의 물고기들이 산다. 싱싱한 물고기들은 유형별로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퍼덕거리기도 하고, 검은빛을 내며 물을 흐리기도 한다. 프랑스 철학자 몽테뉴는 “이 세상에서 나 자신보다 더 거대한 괴물이나 기적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인간이야말로 개인적 욕망에 사로잡혀 세상과 자신을 파멸시키는 괴물로 변할 수 있는 존재이자 또한 모든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의 광기에 스스로 맞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것이다.
낚시꾼들이 밤에 홀로 낚시를 하는 것은 마음의 포만, 내적 풍요를 위함이다. 깎고 또 깎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정신이 고양되는 것을 스스로 체득하기 위함이다.
여름이 오고 있다. 햇살 따뜻한 오늘, 낚시 한번 가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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