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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돋보기
글. 강성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베스트힐스병원 원장)
현대는 정보의 시대이고, 현대인은 정보의 바닷속에 살고 있다. 출근길 횡단보도 앞 신호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버스 안에서도, 회사 엘리베이터 안의 잠깐 동안에도 사람들은 스마트폰으로 무언가를 보고 듣고 검색한다. 이메일을 열면 하루 만에 수십 개의 메일이 가득 차 있고, 스마트폰에서 데스크톱, TV와 곳곳에 설치된 수많은 스크린에서 쉬지 않고 우리에게 정보들을 토해낸다.
지난 30년간 생성된 정보가 과거 5천 년 동안의 정보의 양보다 훨씬 많다고 한다. 그것도 언제 어디서든 공짜로 얻을 수 있는 무한하고 유익한 정보! 이 얼마나 축복 같은 일인가. 그런데 잠깐! 정보는 정말 공짜일까? 그렇다면 왜 공짜로 주어질까? 아니면 나도 모르게 지불하는 대가는 없을까?
당신이 무엇을 검색하던, 정보가 적어서 곤란에 빠지는 일은 절대 없다. 반대로 웹페이지를 아무리 넘겨도 끝나지 않는 정보의 쓰나미에 휩쓸려 헤매게 된다. 한 가지 사건만 검색해도 수십, 수백 개의 비슷비슷한 기사들이 화면 가득 떠오른다. 이런 기사들은 나를 광화문에서 촛불을 들게 격려하기도 하지만, 비트코인으로 수백 배 벌었다는 얘기에 묻지마 코인투자를 하게도 만든다. 하나로 뭉쳐서 울려대는 커다란 목소리들은 잘못에도 권위를 부여하고 단단한 이성도 쉽게 마비시킨다. 엄청나게 많은 정보 앞에서 개인은 어떤 것을 선택할지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잼을 한 통 사러 간다고 상상해보자. 한 매장은 6종류, 다른 매장은 24종류의 잼을 진열하고 있다. 어디서 잼을 사고 싶은가? 대부분 24종류를 가진 매장을 선택할 것이다. 실제 선택심리에 대한 배리 슈워츠 교수의 연구결과를 봐도 24종류의 잼을 진열한 매장을 찾은 이들이 더 많았다. 하지만 실제 구매량은 어떠했을까? 오히려 6개의 잼이 진열된 매장에서 더 많은 구매가 일어났다.
슈워츠 교수는 너무 많은 선택지가 고객에게 선택스트레스가 돼 최종 선택을 주저하게 했고 결국은 선택을 포기하고 다음으로 미루게 만들었다고 해석했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는 넘치는 정보의 바닷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 길을 찾기 위해 오히려 더 많은 정보를 구하는 모순에 빠지거나, 길 찾기를 포기하거나, 아니면 선택 스트레스 속에 그중 가장 커다란 목소리를 맹목적으로 따라가게 된다.
현대는 사이렌의 노래가 수없이 넘쳐나는 사회이다. 매체들과 SNS에서는 뉴스와 대화를 가장한 수많은 사이렌의 노래들이 넘쳐난다. 광고와 홍보라는 얼굴을 정보라는 선한 가면 뒤에 숨긴 채, 유익한 정보, 공짜 정보라는 거짓말로 돈보다 중요한 우리의 ‘시간’과 ‘에너지’를 뺏어간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우리는 사이렌에 자신이 굴복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했던 오디세우스처럼 우리 안의 약함을 인정해야 한다. 오디세우스가 세이렌의 노래를 들으면서도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었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수많은 정보 사이에서 좌초되지 않을 안전판이 필요하다.
폴 발레리의 얘기처럼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 넘쳐나는 정보에 차단막을 치지 않으면, 우리는 담배와 술과 정크푸드를 최대한 많이 팔고 싶어 하는 기업과 버블에 속아 내가 돈을 베팅하길 바라는 세력들, 그리고 스마트폰에 최대한 나를 붙들어두려고 애플의 천재들이 고안한 함정에 빠질 수밖에 없다. 뉴스는 투자에 관심 없던 우리를 주가가 천정일 때 달려들게 만들고, 정작 가격이 바닥일 때는 투자를 끔찍하게 여겨 주식시장 근처에도 가지 않게 만든다. 읽는 사람이 아니라 만든 사람에게 이득을 주는 가짜 뉴스와 가짜 정보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우리는 조지 오웰의 『1984』처럼 선택의 자유 없는 감옥 같은 세상도 거부하지만,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처럼 남들이 설계해 놓은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선택 속에서 길을 잃기를 원치도 않는다. 이 세상은 한시도 쉬지 않고 기업 같은 수많은 이익집단이 부르는 현대판 사이렌의 노래가 울려 퍼지는 곳이고, 그 속에서 최면 당해 살지 않으려면 신중한 정보선택 또는 정보차단의 기술이 필요하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선택하는 사람과 무조건 수용하는 사람의 결과는 정반대로 나타난다. 내가 정보를 이용하거나, 아니면 정보가 나를 이용하거나 선택은 언제나 당신에게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