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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러 갑니다
글. 양지예 기자 / 사진. 김정호
내 고향 산천에는...
집집마다 화사한 벽화가 그려진 가은읍의 좁은 골목을 굽이굽이 지나 가은농장에 들어섰다. 무성한 풀과 나무가 유난히 푸르른 앞마당 덕분에 쉽게 집을 찾을 수 있었다. 마당으로 들어서자, 남무희 선생의 아내가 인자하고 푸근한 미소로 우리를 맞아 주었다. 뒤이어 등장한 주인공은 막상 오늘의 인터뷰를 당일 아침에야 전해 들었단다. “퇴직해서 꽃을 가꾸고 양봉하는 모습을 많은 사람에게 보여주면 조금 힐링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제가 신청했어요.”
아내는 남편이 가꾼 아름다운 앞마당을 많은 이들과 공유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남무희 선생은 농대를 졸업하고, 고향에서 농업 교사를 찾는다는 이야기에 40여년 전 문경으로 돌아왔다. 7살까지 문경 농암면에 살았던 그는 도시로 이사를 한 후에도 늘 고향에 대한 향수가 있었다. 학창시절부터 언젠가 고향으로 돌아가 꽃을 키우고 자연을 벗하며 살고 싶다는 꿈을 꾸곤 했던 것.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고향으로 돌아와 정원을 가꾸고 나무를 심던 그는 27년간의 교직 생활을 마무리한 후, 본격적으로 흙을 만지는 농사꾼으로 살고 있다.

“내가 이사 와서 마늘밭을 갈아엎고 튤립을 심으니까 마을 사람들이 그거 팔 거냐고 묻더군요. 아니라고 했더니 돈도 안 되는 거 뭐하러 심느냐며 의아해했어요.” 다른 농사꾼의 눈에는 다소 쓸모없어 보이던 꽃과 나무는 40여 년이 지난 지금 선생의 앞마당을 훌륭한 정원으로 만들어 주었다. 4월 말이면 꽃이 화사하게 만발해 눈을 즐겁게 하고, 호두나무, 회향나무는 무럭무럭 자라 어느새 무더운 여름이면 서늘한 그늘을 만들어 준다. 이처럼 자연은 어떤 형태로든 우리에게 보답하니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있을까.
자연에서 배우는 삶의 진리
꽃이 있는 곳에는 벌이 모이기 마련. 튤립, 찔레꽃, 접시꽃 등 화려한 꽃들이 만발한 정원 뒤편에 선생이 아들 상대 씨와 함께 벌을 치는 양봉장이 있다. 어린 시절 친구네 집에서 보았던 꿀벌의 비행은 그를 양봉으로 이끌었다. 교직에 있을 때, 학급 아이들과 함께 벌을 치기도 했던 그는 퇴직 후 양봉을 제2의 업으로 삼았다.양봉장을 구경시켜주겠다며 우리를 이끌고 나온 그는, 돌길을 따라 걷다 퍽 자주 멈추어 꽃 이름을 가르쳐주곤 했다.
“인간이 봤을 때 튤립만 필요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풀은 필요 없어 보이지요? 우리 집에서는 풀들도 다 쓸모가 있어요. 벌들이 와서 수정을 시켜주고 꿀을 가져가니, 서로 도우며 함께 살 수 있는 거지요.”
예쁜 꽃들 사이사이로 잡초처럼 무성한 풀들이 보기에는 좋지 않아도 꼭 필요한 존재라고 선생은 이야기했다. 항상 삶의 진리를 알려주는 자연이 ‘세상에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라는 교훈을 또 한 번 가르쳐준 것이다. 나무 덩굴과 꽃밭을 지나, 산양과 금계, 거위, 닭을 구경하며 걷다 보니 윙윙거리는 벌들의 힘찬 날개짓 소리가 점점 가까워 왔다. 양봉장에 켜켜이 쌓인 벌통 주변을 수많은 벌이 바쁘게 날아다니며 꿀을 나르고 있었다. 정원에 꽃이 만발하면 벌들이 날아와 수정하고 벌집으로 돌아가 꿀을 만든다. 자연의 섭리는 이토록 신비롭다.
“벌을 치다보니 삶이 벌의 생리를 닮아요. 겨울에는 푹 쉬고 여름에는 낮도 밤도 없이 생활하죠. 특히 벌을 치는 계절에는 꽃을 따라 이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4시간도 못 잘 때가 있어요. 그래도 내가 꿈꿔오던 생활을 하니 모든게 즐거워요.”
그는 꽃이 피는 계절이면 몸이 두 개라도 모자라지만, 일흔네 살의 나이에도 아직은 ‘내 몸이 가장 무서운 상전’은 아니라며 껄껄 웃음 짓는다. 일은 고될지언정 마음만은 즐겁다며 활짝 미소 짓는 남무희 선생, 이렇게 고생한 만큼 달콤한 꿀을 주는 벌들이 고마울 뿐이다. 그는 농사꾼으로 살며 내 손으로 뿌리고 거두는 정직함을 배웠다고 말한다. 벌들이 만족한 꿀이어야 자신도 만족한다는 그, 올해 처음 딴 햇꿀이라며 내어주는 꿀맛에서 진한 정성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나 활짝 열린 빈집
남무희 선생은 어릴 때부터 꺾인 꽃 한 송이 허투루 보는 일이 없었다. 10살 무렵 친구 집 마당에서 본 채송화에 홀딱 반해 꺾어진 꽃을 얻어 삼목을 한 후 시작된 자연 사랑은 갈수록 깊어만 갔다. “40여 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처음 정원을 만들 때 회양목을 옮기다 잔가지가 잘렸어요. 잘린 가지가 아까워 모래에 꽂아놓은 것이 뿌리를 내려 이제는 무더운 여름 그늘을 만들어 줄 만큼 잘 자랐습니다. 이놈이 나를 제일 반가워해요.”
그는 나무를 쓰다듬으며 흐뭇하게 바라봤다. 어찌보면 농부는 작은 창조주가 아닐까. 60년 전 꺾어진 채송화도, 40년 전 말라 죽었을 나뭇가지도, 자리를 만들어준 선생 덕분에 뿌리를 내려 늠름한 생명으로 자라났으니 말이다. 그는 죽어가는 꽃 한 송이와 꺾인 나뭇가지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손을 내민 것처럼, 삶에 힘겨워하는 사람들이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미약하나마 힘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마당 뒤에 컨테이너로 된 방이 세 개 있어요. 누구든 와서 쉬어 갈 수 있지요. 심적으로 힘든 사람, 마음 아픈 사람들이 와서 자연과 함께 지내며 치유하고 가곤 해요. 봄, 가을로 체험학습을 위한 아이들도 많이 찾아와 머물고 갑니다.” 마음의 병을 얻은 이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진 이들도, 알음알음 그의 농장에 찾아와 자연과 함께하며 활기를 되찾아 갔다. 그의 가족들은 컨테이너를 빈집이라고 부른다. 빈집은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 아닌가. 교직 생활을 끝낸 후에도 선생은 많은 이들의 스승이 되어 인생의 방향을 제시해주고 있었다.
아름다운 자연이 가장 큰 유산
오늘 빈집은 체험학습을 위해 양평에서 내려오는 학생들 차지다. 그는 꽃을 가꾸고 벌을 치는 것뿐 아니라, 독일에서 교육학을 전공한 아들 상대 씨와 농장을 찾아오는 아이들의 체험학습을 이끌고 있다. 일흔이 넘은 그는 이제 조금 뒤로 물러나고, 귀농 전 대안학교 선생님이었던 아들이 앞장서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지만, 아직 현역에서 꽃을 가꾸고 양봉을 하기에 이것저것 참견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은 이제 잔소리쟁이’라며 껄껄 웃지만 아이들에게 하나라도 더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는 것을 학생들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대안학교 학생들이 와서 한 달 가까이 머물고 가요. 우리 정원에서 농사실습도 하고, 양봉도 배우죠. 배우겠다는 학생들에게는 제가 알고 있는 모든 걸 가르쳐 주고 싶어요.”
아이들은 이곳에서 흙을 만지고 계절을 느끼며 자라난다. 그에게 이것만큼의 보람은 없다고 하니, 천생 교육자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자산은 아름다운 자연이 아닐까. 자연 속에서 무럭무럭 자란 아이들은 훗날 자연을 사랑하는 어른이 될 것이다.
자연을 아름답게 가꾸고, 자연이 보답해 주는 선물로 많은 이들에게 베푸는 삶을 사는 그를 만나고 나니 절로 마음이 힐링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