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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일기
글. 김경철(용인대학교 퇴직 · 연금수급자)
연령과 개인이 처한 상황에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퇴직과 함께 나타나는 큰 변화 중의 하나는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갑자기 중단되거나, 상당 부분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같이 살고 있는 가족이 있어도, 없어도 비슷하여, 퇴직하고부터는 나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된다. 이러한 생활 이 독신생활과 다른 점은 독신생활은 불가피한 사정으로 본의 아니게 혼자 사는 사람들을 제외하면, 대부분 자의적으로 선택한 것인 반면, 퇴직 후에 혼자 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타의적인 면이 강하다는 것이다.
혼자 사는 삶에 관한 연구들을 보면 혼자 사는 경우, 그러한 생활을 스스로 선택한 사람들의 개인적인 생활 만족도가, 여러 가지 사정 때문에 타의적으로 선택한 사람들보다 높게 나타나고 있다. 이를 근거로 한다면, 퇴직 후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는 생활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마지못해 수용하는 것보다는 본인 의 행복감을 높이는 데 좋다. 이는, 타의에 의해 퇴직을 했더라도 그 이후의 삶을 보다 긍정적으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본인에게 이롭다는 뜻이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도 있듯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사는 것을 당연한 것이고 행복에 가까운 삶이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요즈음은 컴퓨터나 스마 트폰과 같은 무선 통신기기의 발달과 함께 진정한 행복을 위한 “개인적인 선택”이라는 점을 들어 혼자 사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의 1인 가구 수는 전체 인구의 약 27%에 이른다. “혼자”사는 삶과 “더불어”사는 삶의 구분이 모호해지고 있는 것이다.
퇴직자들의 경우, 퇴직 후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일정 기간 동안에는 별문제가 없지만 어느 시점에 이르게 되면, 자유와 해방감을 오히려 무료하고 답답하게 여 긴다. 또 소외감이나 우울감을 호소하기도 한다. 이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앞서도 언급한 것처럼 혼자 보내는 시간에 대한 보다 긍정적인 생각과 태도가 필요하다. 흔히, “혼자 산다”라고 하면 외롭거나 쓸쓸하고, 이기적이며, 무언가가 결핍된 상황으로 보기 쉬운데, 오히려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좋은 결과를 얻게 되는 경우가 많다. 혼자 있을 때가, 여러 사람과 함께 있을 때보다 정신적으로 더 집중할 수 있고, 창의적이며 영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알아낸 사 례도 많고, 혼자만의 생활, 혹은 혼자만의 고독한 상황이, 위대한 업적이나 지도력을 만들어 내었다는 특성도 주장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경우로는 예수나 부 처 등과 같은 종교 지도자들과, 베토벤이나 뉴턴, 카프카 등과 같은 여러 예술가와 과학자들, 그리고 작가들이 언급된다.
어찌되었건, 다른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사는 것은 더불어 산다는 의미에서 누구에게나 필요하며, 또 피할 수도 없다. 그러나 집단적인 관계에 너무 의존하다보면 오히려 자신의 생활에 대한 만족이 감소할 수 있다. 그 이유는 진정한 만족이나 행복감이란, 타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에 의해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오직 “나”자신 뿐이라는 의미이다. 이는, 다른 사람이 없더라도 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생활을 할 수 있 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한데, 이런 필요성은 나이가 많아질수록 더욱 강하게 요구된다. 왜냐하면, 나이가 들수록 자신의 주변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지는 사람 들이 하나둘 생겨나기 때문이다. 따라서 죽을 때까지 혼자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만, 크든 작든 자신의 행복과 보람을 위해, 나 자신이 정말 하고자 하는 일이 무 엇인지를 잘 알고 또, 그것을 혼자 힘으로 해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렇다고 혼자 사는 것이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사는 것보다 이상적이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하는 생활을 피할 수 없다면, 혼자 보내는 시간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큼 가치 있고 행복한 일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이를 위한 대비를 하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다.
혹자는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것을 “몸에 좋은 약을 복용하는 것”에 비유하기도 한다. 반드시 필요하지만 적당하게 복용하지 않으면 해로울 수도 있다는 의미이며,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를 추구하기는 하되, 혼자만의 생활도 그만큼 즐기고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의 태도와 자신만의 철학이 필요하다는 뜻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