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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러 갑니다
글. 양지예 기자 / 사진. 김정호
‘자전거 종주 삼총사’ 결성
연일 계속되는 폭염주의보에 영산강 자전거길이 한산하다. 한낮의 더위가 심상치 않은 가운데 이세길 선생이 동료 윤성만 선생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몸매를 드러내는 라이딩 복장에 헬멧과 고글까지 갖춰 쓰니 영락없는 ‘청년’의 모습이다. 군살 하나 없이 슬림하고 탄탄한 보디라인 덕분이다. ‘두둑한 뱃살은 인격’이라는 말은 옛말! 건강이 노후의 1순위 자산이 된 지 오래다. 이세길 선생도 약 37년의 교직 생활을 마치고, 2013년 퇴임 직후 첫 계획이 ‘건강 지키기’였다. 오랜 세월 직장 생활을 한 후 퇴직하고 나서 건강이 급격히 나빠지는 이들이 많다고 들은 까닭이다.
“퇴임 후 무력함에 빠지고 여가 관리를 못해서 지루한 삶이 되는 것이 싫었어요. 건강관리도 하고 삶의 활력소를 찾고 싶어서 자전거 라이딩을 계획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은 순조롭지 않았다. 아내가 반대하고 나선 것이다. 평소 가까운 거리를 왔다 갔다 하면서 자전거를 타기는 했지만 MTB 자전거를 사서 국토 종주를 하겠다고 하니,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 것이다. 이세길 선생은 고심 끝에 친구들을 끌어들였다.
“저는 신경통 때문에 운동 삼아 자전거를 시작했어요. 자전거 종주까지 할 생각은 없었고 가까운 거리를 슬슬 타고 다닐 요량으로 자전거를 탔죠. 그런데 이 친구가 이왕 자전거 타는 거, 목표를 갖고 국토 종주 한번 하자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합류하게 됐죠.” 오늘 인터뷰에 함께 동행한 동료 윤성만 선생은 친구의 꾐에 빠져 힘든 길에 들어서게 됐다며 장난스럽게 핀잔을 줬다. 윤성만 선생 외에도 목포에 살고 있는 자전거 마니아 류훈영 선생이 자전거 종주 멤버에 합류했다.
1976년 첫 부임지에서 함께 근무했던 세 명의 동료가 퇴임 후 다시 의기 투합한 것이었는데, 이세길 선생의 아내는 그제야 자전거 종주를 허락했다. 총 1,896km의 자전거 대장정이 시작된 것이다.
우정으로 함께한 그랜드슬램
그들은 4대강 종주와 국토 종주를 계획하고 2013년 8월 23일 첫 페달을 밟았다. 첫 코스는 영산강 종주와 섬진강 종주! 2박 3일간 담양댐에서 영산강 하굿둑까지 133km 거리의 ‘영산강 종주’와 섬진강댐에서 태인체육공원까지 134km에 달하는 ‘섬진강 종주’가 펼쳐진 것이다. 목포에 거주하는 류훈영 선생이 자전거를 싣고 광주까지 와서, 이세길, 윤성만 선생과 합류한 후, 본격적으로 자전거 종주가 시작됐다.
“자전거 종주를 하다 보면 차량으로 이동해야 할 때가 있는데 저희는 거의 시외버스를 이용했습니다. 시외버스 뒤칸에 딱 자전거 세 대가 들어가기 때문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었죠.”
이세길 선생은 그룹 별로 움직이다 보면 차량을 대절하기도 하는데 인원이 딱 맞아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있었다며 삼총사의 위용을 과시했다. 세 명이라 좋은 점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제가 체력이 가장 약하니까 이 친구들이 나를 항상 가운데 세워요. 이세길 선생은 길을 잘 찾기 때문에 리더로 달리면서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자전거를 워낙 오랫동안 타서 베테랑인 류훈영 선생은 꼭 내 뒤에서 나를 독려하면서 끝까지 종주할 수 있도록 이끌었어요.”
자전거만 타면 냅다 혼자 내달려서 이세길 선생에게 ‘질본(질주본능)’이라는 호를 붙여줬다며 장난스럽게 이야기하면서도 윤성만 선생 역시 앞뒤에서 이끌어주는 친구들이 아니었다면 자전거 종주는 꿈도 꿀 수 없었을 거라며 고마워했다. 2박 3일에 걸쳐 완주한 첫 여정에서 자신감을 얻은 그들은 영산강에 이어 한강, 낙동강, 금강 4대강 종주와 아라서해갑문에서 낙동강 하굿둑에 이르는 633km의 국토 종주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종주를 하면서 어려움도 많았죠. 금강 상류길을 달릴 때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에도 야간 라이딩을 감행했다가 갑자기 튀어나온 고라니들과 두 번이나 부딪칠 뻔했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철렁해요.”
이세길 선생은 야간 라이딩의 위험성을 이야기하며, 종주할 때에는 충분한 기간을 잡아 야간에는 쉴 수 있도록 하라고 조언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새재길을 오르던 중 만난 여름비는 오감이 기억하고 있는 강력한 추억이다. 바퀴에서 튀는 구정물을 뒤집어쓰면서 언덕길을 오르던 기억, 무더운 여름인데도 불구하고 살을 파고드는 차가운 빗줄기의 촉감은 아직도 몸이 덜덜 떨릴 정도로 생생하다. 이처럼 어려움도 많았지만 코스를 완주하고 인증소에서 인증도장을 찍을 때마다 뿌듯한 성취감과 도전정신이 되살아나곤 했다는 그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천 자전거길, 동해안, 제주도 등 약 1,900여km를 모두 완주해야 달성할 수 있는 그랜드슬램을 완성하기로 결심하고 마지막 목적지까지 달리고 또 달렸다. 2017년 5월 20일, 드디어 그들은 장장 4년에 걸친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할 수 있었다.
자전거 라이딩, 자신감을 선물하다!
이세길 선생은 자전거 국토완주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후 자신감이 두둑해졌다. 이제 60대 후반에 접어들었지만, 체력만큼은 청년 못지않다는 패기와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큰 수확이라고.
“체력이 좋아지고 배도 많이 들어갔어요. 자전거를 탄 이후로는 바지를 바꿔야 할 정도로 뱃살이 빠졌어요. 요즘 우리 나이에 성인병 하나 안 달고 사는 사람이 없는데,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자신감도 생깁니다.” 그들은 노후에 건강만큼 중요한 것이 어디 있겠냐며 자전거 라이딩을 강력 추천했다. 이세길 선생은 평소에도 집 근처 화순 너릿재 길을 매일 왕복하면서 체력을 키우고 있다. 4.9km의 길을 3번 정도 왕복하면 30km! 이렇게 꾸준히 운동을 해야 국토 종주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섬진강 라이딩 중 75세 노부부 라이더를 만난 적이 있어요. 서울에서 오셨다는데 우리에게 구릿빛 팔과 다리, 헬멧에 부착된 인증 마크들을 자랑하셨어요. 그분들의 건강함을 보고 우리도 열심히 건강관리 해서 저 나이까지 함께 달리자고 다짐했죠.”
이제 이세길 선생의 목표는 해외 자전거 여행! 첫 목적지는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이란다. 무엇이든 서두르는 사람이 있어야 계획을 실천할 수 있다고 하지 않나. 윤성만 선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도 어느새 ‘해외에 가자고 하니 어쩔 수 없이 끌려가지 않을까 싶다’며 웃음 지었다. 구불구불한 강변길을 따라 맑은 강과 모래톱 등 아름다운 자연을 보면서 자전거를 탈 수 있었던 섬진강 라이딩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는 이세길 선생. 아름다운 자연과 소중한 우정, 거기에 건강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니 그의 자전거 사랑을 어찌 이해하지 못하겠는가. 앞으로도 삼총사의 자전거 라이딩은 쭉 계속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