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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일기
글. 김경희(전주대학교 총무처 퇴임·연금수급자)
이발을 했다. 아니 머리를 잘랐다. 이발은 머리를 깎고 다듬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나는 아파트 단지 내 미장원에서 머리만 잘랐다. 면도도 하지 않았으니 뭘 다듬어 준 게 있겠는가. 돌아오면서 한참 뒤 생각하니 오늘 같은 날이라도 이발소로 가 머리도 깎고 면도도 하고 다듬어 줄 걸…. 그래, 천성대로 사는가보다 싶었다. 아침에 운동을 마치고 평소대로 손자들을 데리고 와서 달래가며 서둘러 밥을 먹게 했다. 이어서 등교 시간 늦지 않게 학교 보내야 하는데, 그게 꼭 군대 생활 점호와 같이 되어 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는 평소와 달리 각각 1학년, 4학년인 손자들이 꼬막손으로 분홍색 봉투를 내민다. 1학년 손자는 작은 지폐 두장을 동봉하고서 초보 글씨로 “할아버지 축하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라고 썼다. 글씨 아래엔 어른과 아이가 손을 잡고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놓았다.
그리고 어른 그림 아래에는 ‘할아버지’, 아이 그림 아래엔 ‘나’라고 썼다. 아침 없는 날이 없고 생각 없이 하루를 보내는 날도 드물다. 잠자리에서 깨어나는 시간, 나는 허리 아픔에서 탈출해 일어날 수 있음을 하나님께 먼저 감사드린다. 이어서 책상 앞에 앉아 생명의 아침시간 맑은 정신으로 가족들을 생각하며 힘든 일 없이 살아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를 기도한다. 다음으론 몸속에 온수 한 잔을 공급한다. 그리고 산길에 나선다. 그렇게 보내는 시간이 하루의 내 인생을 끌고 간다. 그동안 나는 고향에서 객지에서 비틀거리고 넘어지면서 생명으로서 몸살을 많이 앓았다. 그래도 용케 살아남아 부모님과 한아파트에서 지내다 부모님 먼저 허무의 본질 속으로 영영 떠나보내었다. 나는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오셨던 그분들에게 존경을 표함에 인색했다. 자본주의 시대의 꽃인 경제 쪽으로 둔하고 무능한 사람들 속에 가족도 있었고 나도 갇혀있었다. 그러면서 나 혼자 열심히 사는 양 잘난 체를 했다. 생각해 보면 참 싹수없는 소행이었다.
산길을 거닐다 보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겸손해지는 시간이 찾아온다. 자유롭게 걷지 못해 불편해 하는 이웃을 볼 때는 못볼 상황을 훔쳐보는 것 같이 미안하기도 하다. 내의지대로 내 육신을 운행할 수 있다는 것, 그게 점점커 보인다. 그러는 가운데 자동차 주행 가능거리를 보면서 내 삶의 주행거리와 남은 에너지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오늘은 내게 있어 의미 있는 날이다. 그러나 누구에게 자랑할만큼 특별한 것은 아니다. 누구 같이 아들이 박사 학위 받는 날도, 검사, 판사에 임명되는 날도 아니다. 주식이 오르거나 복권 당첨은 더욱더 아니다. 그저나 혼자 작은 의미를 안고 ‘내가 이 땅에 온 뜻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강물에 내 얼굴 비춰보듯 해야 할 날이다. 이어서 이 땅에 올 때의 예의가 있었다면 갈 때의 도리도 소중하겠다는 점을 곱씹어 볼 날인 것이다. 내가 올 때는 아버지가 고추를 매단 금줄을 대문 앞에 내걸었다. 아들이 태어난 사실을 알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알아서 출입을 자제해 달라는 당부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갈 때는 어찌 될지 모를 일이다. 그때의 환경이 어찌 될지도 모르고, 내 뜻대로 된다는 보장도 없다. 그래서 더욱 신앞에, 그리고 이웃에 겸손해야 한다는 생각뿐이다.
미장원에서 머리를 자르며 커트 보에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유심히 보았다. 검은머리에 흰 머리털이 꽤 섞여있다. 그래, 때 되면 모두 잘려 나가고, 떠나는 거겠지 싶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저 머리털도 내 부실한 치아로 더디 씹어 삼킨 음식의 영양분으로 자랐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속 한 곳이 묵직했다. 그 순간 “다 되었습니다.”하는 미용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수고했다는 말을 남기고 출입문을 밀고 오후의 세상 속으로 발을 내딛었다. 그런데 어디선가 ‘아름다운 젊음은 자연현상이지만, 아름다운 노년은 예술작품’이라는, 들어봄직한 음성이 들려오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