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이야기를 담다  >  문학의 향기
 
문학의 향기
글. 김진복(영진전문대학 명예교수 퇴임·연금수급자)
아내가 외출할 때 내가 하는 말이 있다. “조심해서 다니시오.” 5년 전쯤 일이다. 목사 사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전화를 받고 응급실로 달려가 보니 응급실 한편 침대에 돌아가신 분이 자는 듯이 눈을 감고 있었다. 뇌진탕이라 외상은 없었다. 70을 훨씬 넘긴 나이지만 빈틈없고 영리하고 꼼꼼하신 분이 매일 다니는 집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가족들도 신호위반을 하실 분이 아니라고 주장했지만 빨간불이 켜졌을 때 도로를 건넜다는 경찰 조사가 나왔다. 얼마 전 일본 근해에서 미 해군 구축함이 필리핀 컨테이너선과 충돌하는 해상 교통사고가 있었다. 길이 154m의 군함이 222.6m의 상선과 부딪쳐 2대의 인양선에 끌려 기지로 옮겨졌다고 했다. 최첨단 레이더와 장비를 갖춘 ‘신의 방패’로 불리는 세계 최강의 군함이 예상외의 사상자를 내는 등 완전 체면을 구긴 황당한 사고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이처럼 불가사의한 일은 어떤 사람도, 그 어떤 대상도 피할 수 없는 것인가.
어린 시절 창공을 휘젓는 비행기를 보면서, 끝이 없을 것 같은 광활한 바다 위를 누비는 돛배를 보면서, 높디높은 하늘 위를 날고 있는 철새의 대오를 보면서, 거침없이 자유자재로 다닐 수 있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고학년이 되어 새도, 비행기도, 배도 정해진 길로 다닌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지금까지도 선박의 해상 충돌사고 같은 것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한다. 사람이 사는 곳 어디든지 길이 있다. 길을 가는 사람은 목표가 있다. 길을 잘못 들었다는 것은 가야 할 노선에서 벗어났다는 말이다. 길이라는 단어 앞에는 어떤 단어를 붙여도 의미가 살아난다. 인생길, 고샅길, 순례길, 나그넷길, 뱃길 등 새로운 말을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한자어로 도(道)와 로(路)는 다 같이 ‘길’을 뜻하지만 굳이 구별하자면 전자는 큰길, 후자는 좁은 길이 아닐까. 도(道)에는 물리적 길만이 아닌 또 다른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다. 보통사람들이 가보지 못한 길을 먼저 간 성현들과 선각자들이 터놓은 보이지 않는 길이다. 보이는 길은 변화무쌍하지만, 보이지 않는 길은 영원불변하다.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 할 도리(道理)나 정도(正道)에는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의 대도무문(大道無門)이나 길이 아니면 가지 말라는 말도 있다. 지각 있는 사람들은 자기 삶의 사표(師表)가 된 인물들이 걸어간 길을 답습하고 때로는 사숙(私淑)한다. 어떤 길을 가든 사람들은 각자의 길이 있고, 그 길에서 사는 보람을 얻는다. 세상이 변했다는 말은 모름지기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에 혼란이 오고 있음을 뜻한다. 사람들이 갖는 오류는 자기가 걷는 길만이 정도라고 우기면서도 스스로 선택한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사는 사회는 복잡하고 상이한 체제들로 구성되어 있고 체제는 상호관련성을 가진다. 각 체제가 제 역할을 충실히 하면서 유기적 조화·소통을 해나가면 조직이든 조직 속의 사람이든 안정감을 유지할 수가 있다. 스승이 가르침의 본질에서 떠나 제 역할을 저버린다면 사도(師道)에서 벗어난 것이다. 종교지도자가 신앙의 본궤도를 이탈하면 종교가 아닌 사교(邪敎)의 길로 들어갈 위험이 있다.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최선의 길로 이해·조정할 책임이 있는 정치인이 정도(政道)를 걷지 않고 권력에 사로잡혀 사로(私路)를 만들어 간다면 정상배(政商輩)가 되기 십상이다.
사람들은 서로 다른 철학·이념·사상을 가지고 자기실현의 길을 가기 위해 온갖 시행착오를 되풀이하면서 도전·경쟁·투쟁을 한다. 변화무쌍한 환경에서 자기 도생(圖生)의 길을 확고히 하기 위함이다. 사람이 자기의 길을 바르게 간다는 것은 道를 세우고 주어진 역할을 다 한다는 의미다. 나는 길눈이 어두운 사람이다. 한번 가 봤던 길도 제대로 찾지 못해 방황하는 경우가 숱하게 있다. 운전을 할 때는 멀고 가까움에 관계없이 아예 내비게이터를 켜 놓아야 마음이 편하다. 꼭 나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해본다. 잘 다니던 길도 잘못 드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다. 아는 길도 물어가라는 말이 그래서 있는 것이다. 나는 내가 걷는 길이 옳다고 고집하지는 않지만 지금까지 걸어 온 길을 회오하지도 않는다. 형형색색으로 변하는 이 세상에서 누구나 걷고 싶을 정도의 풍요롭고 아름다운 길을 찾아서 다듬어 가고 싶다. 길을 찾는 사람들의 길라잡이가 되고 싶다.
글. 김정기(동아대학교 명예교수·연금수급자)
“소나무가 나이테(年輪)를 속으로 감춘 채 봄마다 신록(新綠)으로 세상을 물들이듯 오늘을 살아야 한다.” 시인협회 문정희 회장의 말이다. 그리고 우리들의 생활철학이기도 하다. 소나무가 우리들에게 시사(示唆)하는 생활철학은 이뿐만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미국 네바다주, 동부 워싱턴주 산록의 산악지대·화이트산맥(white mountain)의 3,000~4,000m나 되는 높은 곳에 브리슬콘 Bristlecone:강철소나무)이라는 소나무가 군생(群生)하고 있다. 강철같이 단단해서 식물이라기보다 차라리 자라는 바위 같은 강철소나무는 개중에 5,000년이나 된 소나무도 있다고 하니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수명이 긴 생물이 아닐까 싶다. 이 긴 수명의 소나무는 5,000년이나 생존하다가 아리조나대학교의 수목연륜연구소 연구팀에 의해 연구용으로 절단되어 현재부터 B.C. 3000년에 이르기까지의 연륜층(年輪層)으로 구분되어 있다. 아울러 세포구조·지구자장·대기오염도 등 여러 가지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고 한다.
선사(先史)의 신비를 지닌 이 소나무들은 또한 놀랍게도 나이테를 정확하게 가져, 어떤 것은 10㎝ 남짓한 수목(樹木)폭에 1,100개나 되는 연륜(年輪)을 형성하고 있어 수목전문가들이 인공위성에서 실어온 월석(月石)만큼이나 소중하게 다룬다고 한다. 소나무는 연륜의 대소로서 지나간 수 천년동안의 대 한발, 대 홍수기, 그리고 하계절의 온도 강하기의 유무 등을 연도별로 조사하는 일종의 고고학적 재료로도 귀중하게 이용·전시되고 있는 것이다.
고사(枯死) 후도 2,000년은 자연풍상에서 쓰러지지 않고 견디며, 이것의 목재는 4,000년이나 사용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깎아 세운 절벽과 하늘을 배경으로 장엄하게 서 있는 신비스런 이 소나무들은, 절묘하고도 환상적인 형태를 지녀, 수 천년동안에 많이 겪었을 역경에도 굴하지 않고 고고하게 이어온 생명의 고귀함을 찬가(讚歌)하듯, 그 멍든 골격은 기 천년을 두고두고 다듬은 대단한 예술품이라 할 것이다. 이 소나무들도 비옥한 토양에서 자란다면, 빨리 자라 일찍 죽고, 그리고 쉽게 썩고 말 것이 아니겠는가.
도대체 브리슬콘 소나무가 어떻게 해서 이처럼 오래 살 수 있었을까. 어마어마한 장수 앞에서는 경악감마저 느끼게 된다. 가장 오래된 소나무들이 거의가 해발 3,000m 정도에서 암석풍화와 토양생성작용이 덜 되어 자양분이 적고 얇은 토양층에 뿌리박고, 부족한 강우량을 견디며 험준한 암산 벽에서 장수를 자랑하며 식생(植生)한다는 것은, 실로 ‘패러독스’가 아닐 수 없다. 수목생장에 필수적인 자양분을 담뿍 지닌 비옥한 토양에서 자라는 수목들의 수명은 이것에 비하면 너무나도 짧아 보인다. 현대인이 때로는 미식(美食)을 피해 힘겨운 역경을 일부러 가져보려는 생각과 노력들이 실제로는 장수(長壽)에 도움을 준다는 것일까. 5,000년 묵은 살아있는 브리슬콘 소나무의 장수체험 기(記)는 인간의 건강법을 일러주는 교훈으로 삼을 만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