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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심리
글. 강성민(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우리는 왜 늘 원하는 것을 나중으로 미룰까? 이 질문에 답하기 전에 먼저 당신이 어떤 타입인지 알아보자. 당신에겐 불행을 피하는 것과 행복을 좇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같은 뜻 같다고? 그럼 질문을 바꿔보자. 당신은 단맛을 더 잘 느끼는 유형인가? 아니면 쓴맛을 더 잘 느끼는 유형인가? 미안하지만 사실 이 문제엔 트릭이 있다. 이 문제의 답은 ‘당신’이 어떤 유형이건 상관없이, ‘사람은 누구나 쓴맛을 더 잘 느낀다’이다. 고개를 갸웃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은 단맛보다 쓴맛에 자그마치 100배 더 민감하다. 혀에는 작은 돌기 모양의 미뢰라는 기관이 있어 미뢰를 통해 맛을 느낀다. 0.02㎜ 높이에 작은 꽃봉오리 모양처럼 생겨서 맛봉오리라고도 한다. 쓴맛을 느끼는 미뢰의 숫자가 단맛을 느끼는 미뢰의 그것보다 100배 이상 많다. 이 차이 덕분에 단맛은 1/200의 차이를 구별하는데 비해, 쓴맛은 무려 1/20,000의 차이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우리의 혀는 쓴맛에 특별히 더 발달했다. 이는 오랜 진화의 결과이다. 단맛을 더 잘 느낀다면 살면서 행복한 순간들이 더 많았을지 모른다. 하지만 상한 음식이나 위험한 음식을 먹을 일이 없는 지금의 풍요로운 시대가 오기 전까지, 인간은 오랫동안 야생에서 썩은 음식과 독이 든 식물들 틈에서 살아 왔고, 자칫 잘못해서 먹고 죽는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쓴맛을 느끼는 미뢰가 많은 것이 유리했다. 즉, 단맛(기쁨과 행복)은 있으면 더 좋은 것 이지만, 쓴맛(고통과 위험)은 내 생존을 위협할 수 있어, 늘 살펴야 하는 우선 신호(단맛 보다)였던 것이다.
인간이 진화해온 역사를 1년이라고 가정하면, 그 1년 중 364일과 23시간 50분 정도를 인간은 독이 든 과일을 구별하고, 수풀이 흔들릴 때 그 뒤에 호랑이가 있는지, 토끼가 있는지를 파악하는 데에 온 신경을 쓰며 살아온 존재다. 즉 위험을 피해서, 더 오래 생존하는 일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과제였다. 이제 독이 든 과일도, 산책 중에 호랑이를 만날 일도 없는 풍요롭고 안전한 세상에 살고 있지만, 그 시간은 인간이 1살이라면 불과 최근 10분 사이 일어난 변화일 뿐이다. 인간의 뇌와 본능은 냉장고에 음식이 가득 채워져 있고, 동물원에나 가야 맹수를 만날 수 있는 현재에도 여전히 벌거벗고 돌도끼를 들고 다니던 사냥꾼의 뇌와 같은 상태이다. 여기에 아이러니가 있다. 그래서 우리는 원하는 것을 추구하고 행복을 향해 가기보다는, 뜻하지 않은 불행을 피하기 위해 자신을 보호할 벽을 쌓아 올리는 데에 평생을 바친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그렇게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본능적’으로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다.
처음의 질문에 답을 해보자. 우리가 어떤 사람이냐에 상관없이 단맛보다 쓴맛에 훨씬 더 민감한 것처럼, “늘 행복하게 살고 싶다”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불행을 피하는 데에 평생을 바치며 산다. 고통을 피해 사는 삶을 우리는 부모와 사회로부터 배운다. ‘다른 애들처럼 얌전히 있어라’ ‘숙제부터 하고 놀아라’ ‘연애는 대학가고 나서 해도 늦지 않다’ ‘어서 빨리 직장부터 잡아라’ ‘남들 다 하는 결혼, 늦으면 안 된다’ ‘작아도 내 집은 있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것은 늘 ‘다음에’ 그리고 ‘나중에’가 된다. 이렇게 우리는 바로 지금 원하는 것을 해도 된다는 허락을 평생 받지 못하다가, 인생의 노을이 지는 시간이 왔을 때야 비로소 ‘그렇게 살지 말았어야 했는데…,’라고 후회를 한다.
‘빈둥지증후군’이라는 용어가 있다. 내가 부모로부터 배운 대로, 자식들 또한 좋은 학교 보내고 좋은 직장 보내기 위해 모든 것을 바쳐 뒷바라지 하다 보면, 결국 좋은 짝을 만나 자식이 떠나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내가 열심히 애써 온 것들이 드디어 이뤄진 그 순간, 행복과 성취감을 느껴야 할 그 순간에, 평생을 바쳐온 그 둥지가 빈 둥지가 되는 것을 보며 “내가 더 이상 해야 할 일도 없고,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었구나!”하고 느끼는 상실감과 공허함을 일컫는 말이다. 꼭 자식이 출가할 때가 아니더라도, 갑자기 큰 병에 걸리거나, 가까운 사람이 죽거나, 자기 자신과 동일시했던 직장을 나가게 될 때, 인생의 고비에서 비로소 사람들은 그동안 미뤄왔던 것들을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는 것을, 바로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을 해야 한다는 것을 깨닫는다. 내가 평생 좇아온 것이 행복이 아니라, 단지 위험과 불행을 피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애써 불행을 피해 최선을 다해도, 그 끝에 꼭 행복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마지막으로 전에 읽으면서 마음으로 끄덕였던 글귀 하나를 덧붙인다. “우리의 평생 목표는 삶이 안정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오지 않는다.” 그렇다. 삶이 안정되는 날은 오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삶이 안정되지 않은 그 순간에도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 수 있고, 그것을 선택 할 수 있다. 흔히들 습관이 인생을 결정짓는다고 한다. 습관 중에 가장 안 좋은 습관은 바로 행복을 나중으로 미루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