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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주신
선생님

이경화

동원대학교 재직

출근길 차창 너머로 화사하게 뿜어대는 긴 햇살이 무척이나 싱그럽게 느껴집니다. 파랗고 높은 하늘은 더할 나위 없이 싱그럽게 보이고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합니다. 어제 내린 눈으로 얼룩진 차를 보니 오늘은 왠지 세차를 해서 차에 묻은 얼룩을 지우고 반짝반짝 윤을 내야 할 것만 같습니다.

FM 라디오에서 흐르는 경쾌한 음악은 자연스레 콧노래를 흥얼거리게 하고, 살짝살짝 룸미러를 보며 오늘따라 잘 그려진 눈썹을 찡끗 세워보기도 하고, 투명하리만치 잘 정리된 파운데이션은 얼굴의 주근깨는 하나도 보이질 않도록 섬세하게 잘 발라져 있습니다.

오늘은 퇴근 후에 아주 특별한 약속이 있는 날입니다. 중학교를 졸업한 지 벌써 20여 년이 훌쩍 넘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어 부지런히 살아가고 있고, 누구나 다 그러하듯 삶이 바쁘다는 이유만으로 옛날의 기억은 추억으로 묻어두고 하루하루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해서 느끼는 가정에서의 소중한 일상…. 그 일상 속에서 가끔씩 연락하는 친구들과의 수다는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너 중학교 때 미술선생님 알지? 나랑 친한 미진이가 우연히 SNS에서 그 샘이랑 연락이 닿았나 봐. 다음 주에 만나기로 했는데, 너도 같이 갈래?”

“미술선생님? 저는 잠깐 동안 중학교 시절의 미술선생님을 떠올렸습니다.

아, 박희순 미술선생님. 맞다…. 저는 얼굴에 주근깨가 참으로 많습니다. 엄마, 아빠 모두 얼굴에 점이 많은데 아마도 그 영향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주근깨가 생겼나 봅니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별로 생기지 않아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중학교 입학하면서 사춘기가 찾아올 무렵 얼굴엔 검은 점이 가득했지요. 어린 나이에도 우리 집이 그다지 넉넉하지 못했던 집안 살림이라는 걸 어렴풋이 알았기에 요즘처럼 성형수술이나 점 제거술을 꺼내지도 못했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같이 어울려 고무줄놀이를 하던 친구들이 중학교 입학하고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거울을 들여다보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이성과 외모에 관심이 커졌고 자연스레 외모에 대한 열등감이 생겼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엔 웅변대회도 참가해 상도 타고 예능도 하면서 활발했던 성격이 점점 내성적이 되고 소심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던 어느 날, 미술선생님께서 수업시간에 저를 보시고는 그러시더군요.

“넌 빨강머리 앤 같구나, 얼굴에 난 점이 너무 이쁘다.”

이쁘다… 이쁘다… 이 주근깨가 이쁜 거였구나….

전 저주받은 주근깨라 생각했는데 모든 친구 앞에서 이쁘다고 별명까지 ‘앤’이라 지어주시며 환히 웃어 보이는 선생님이 너무 고맙고 좋았습니다. 그 뒤로도 선생님은 제가 교무실에 갈 때나 복도에서 마주칠 때도 ‘빨강머리 앤’이라고 불러주시며 용기를 북돋아주셨습니다. 그렇게 1년을 보내고 선생님은 다른 곳으로 전근을 가셨습니다. 한창 사춘기 시절 외모의 결점으로 남모를 고민을 하던 저에게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용기를 심어주신 선생님, 너무나 그립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추억을 먹고 산다고 하는데 저는 선생님께서 보여주셨던 사랑이라는 추억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매년 5월 15일 스승의 날이 되면 선생님 생각이 간절해져서 한번 찾아뵈어야겠다고 몇 번을 생각했지만 바쁘다 보니 세월이 금방 지나가버렸네요. 제 사춘기 시절의 한 획을 그어주신 선생님. 그 획이 매우 크고 향기가 짙어서 지금까지도 그 향기를 맡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퇴근 후에는 선생님을 만나러 달려가겠습니다.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선생님, 깊이 사랑합니다. 선생님의 넓은 사랑과 은혜, 잊지 않겠습니다.

2025년 3월 4일, 봄의 문턱에서 제자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