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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메르문화의 보고 앙코르와트

『마하바라타』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부먼 옛날 인도 북부에 ‘판두’라는 왕이 살았다. 어느 날 사냥을 나간 판두의 눈에 교미 중인 사슴 두 마리가 들어왔다. 판두가 쏜 화살을 맞은 수사슴이 죽기 전에 무시무시한 저주를 퍼부었다. “너는 아내와 사랑을 나누려 시도하는 순간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저주로 인해 자식을 가질 수 없게 된 판두는 고심 끝에 아내들을 신과 결합시켰다. 얼마 후 특별한 능력을 지닌 다섯 아들이 태어났는데, 이들이 바로 <마하바라타(Mahābhārata)>의 주인공인 ‘판다바 형제’이다.

글·사진 이준명(작가)
인용 『마하바라타』, 아시아, 2014

크메르문화의 보고(寶庫), 앙코르와트

9~15세기 크메르제국의 수도였던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지에는 아름다운 왕궁과 사원이 늘어서 있다. 그중에서도 백미는 ‘앙코르와트(Angkor Wat)’이다. ‘앙코르’는 왕도(王都), ‘와트’는 사원이란 뜻으로, 12세기 초 수리야바르만 2세가 세워 비슈누 신에게 봉헌했다. 실제로 앙코르와트를 눈앞에서 보면 거대한 규모에 입이 딱 벌어진다. 동서 1,500m 남북 1,300m에 이르는 외벽 안쪽에는 폭 190m짜리 해자가 둘러쳐 있다. 단일 사원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3층으로 이뤄진 사원은 크메르인이 믿었던 인도의 우주관을 형상화했다. 1층은 동물들이 사는 미물계(微物界), 2층은 사람들이 사는 인간계(人間界), 3층은 신들이 머무는 신계(神界)를 의미한다.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사원의 구조가 지닌 의미가 더욱 도드라진다. 외벽과 해자는 세상을 둘러싼 산맥과 바다를, 사원 중앙에 우뚝 솟은 탑은 세계의 중심인 수미산을 상징한다. 한마디로 온 우주를 사원 안에 담아 신에게 바쳤다 할까. 하지만 앙코르와트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바로 사원의 복도를 따라 펼쳐지는 부조들이다. 특히 인도의 대서사시인 <마하바라타>의 전투 장면이 눈길을 끈다.

- 48m 길이의 마하바라타 부조

판다바 형제의 고통스런 추방

판두에게는 원래 왕위를 계승할 맏형인 드리타라슈트라가 있었다. 형이 장님이어서 판두가 먼저 왕위에 올랐고, 판두가 죽자 하는 수 없이 형이 왕위를 이었다. 드리타라슈트라에게는 총 100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을 ‘카우라바 형제’라고 불렀다. 그중에서도 맏이인 두루요다나가 유독 사촌들인 판다바 형제를 미워했다. 신의 아들들인 판다바 형제가 제각각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첫째인 유디스티라는 ‘생각과 말과 행동이 올바르고 힘과 용기까지 갖춘 가장 훌륭한 인간’이란 칭송을 듣고 있었다. 사람들의 관심이 온통 판다바 형제에게 쏠리자 두르요다나는 질투심을 억누를 수 없었다. 이대로 뒀다간 자신이 물려받을 왕위를 위협할 것이란 생각에 판다바 형제를 죽이기로 마음먹었다.

두르요다나는 암살 시도가 번번이 실패하자 유디스티라를 불러 유배 생활을 걸고 내기를 제안했다. 유디스티라가 속임수에 넘어가 내기에 지는 바람에 판다바 형제는 왕국에서 추방당하고 말았다. 몸에 사슴 가죽을 걸치고, 맨발로 흙길을 걸으며, 음식을 빌어먹어야 하는 유배 생활은 고통의 나날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유배 생활이 끝나갈 때쯤 판다바 형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다. 정령의 경고를 무시하고 호수 물을 마셨다가 형제 중 넷이 목숨을 잃은 것. 마지막으로 유디스티라가 호숫가에 나타나자 정령이 질문을 퍼부었다.

“죽어가는 사람의 친구는 누구냐?” “살아 있는 동안 베푼 자비.” “신이 내려준 친구는 누구냐?” “아내.” “무엇을 버려야 슬픔이 가고 기쁨이 오는가?” “분노.” … “가장 놀라운 불가사의는 무엇이냐?” “날마다 사람이 죽고 주검이 실려 나가지만, 구경꾼들은 자기도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는 영원히 살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놀라운 불가사의입니다.”

유디스티라의 현명한 대답에 감탄한 정령은 죽었던 형제들을 모두 되살려줬다. 덕분에 판다바 형제는 13년의 유배 생활을 무사히 마치고 내기의 악몽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제 본인들이 빼앗긴 것을 되찾고, 뼛속까지 스민 원한을 갚을 일만 남았다.

- 화살 침대에 누워 죽음을 기다리는 비슈마

사촌간에 벌인 비극적인 전투

앙코르와트 정문을 지나 475m에 이르는 참배로를 따라가면 사원에 다다른다. 계단을 올라 오른편 회랑으로 들어서면 <마하바라타>의 장면을 새긴 부조가 나타난다. 48m 길이의 부조는 판다바와 카우라바 형제들이 벌인 전쟁을 묘사하고 있다. 유배에서 돌아온 판다바 형제는 자신들의 왕국을 되돌려달라고 요구했지만, 두르요다나는 “모든 것을 희생하더라도 판다바들과 나란히 살지는 않겠다”라며 매몰차게 거절했다. 이제 더는 물러날 곳이 없었다. 두 집안은 서로의 목숨을 걸고 쿠르크셰트라 평원에서 참혹한 전투를 벌였다.

앙코르와트의 부조에는 전투에 참여한 양쪽 군대의 모습이 생생히 새겨져 있다. 왼쪽에서는 카우라바의 군대가, 오른쪽에서는 판다바의 군대가 달려와 부조 한가운데에서 격렬히 충돌한다. 판다바 형제 중 셋째인 아르주나는 신들의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최고의 전사다. 화살을 쏘면 무엇이든 맞히는 백발백중의 신궁이기도 하다. 게다가 그의 전차는 비슈누 신의 화신인 크리슈나가 몰기에 적진을 자유자재로 넘나들 수 있다. 그런데도 아르주나는 전투를 앞두고 슬픔에 전의를 상실했다. 이제 곧 자신의 화살에 죽어나갈 사람들은 모두 자신과 한 핏줄이었다. 그중에는 100명에 이르는 사촌들, 할아버지, 삼촌은 물론 무예를 가르쳐준 스승도 포함되어 있었다.

눈물을 흘리며 고뇌하는 아르주나를 바라보던 크리슈나가 입을 열었다. 왕과 무사가 속한 크샤트리아 계급의 의무를 설명하며 전장으로 나가라고 독촉했다. 결국 두 사람의 대화는 인간성, 영혼, 진리 등 힌두교 철학으로까지 번져갔다. 이 부분을 따로 떼어 <바가바드기타>라고 부르며, 힌두교 3대 경전 중 하나로 꼽기도 한다. 긴 토론 끝에 크리슈나는 신성을 드러내며 선언했다. “네 앞에 서 있는 이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카르마(업)를 통해 이미 살해되었다. 너는 그들을 파괴하는 도구일 뿐이다.” 크리슈나의 가르침에 깨달음을 얻은 아르주나는 마침내 모든 의심을 떨쳐내고 활을 들었다.

<마하바라타>가 새겨진 회랑에는 너무 많은 장면이 섞여 있어 눈이 어지러울 정도다. 천천히 걸으며 음미하지 않으면 중요한 장면들을 놓치기 쉽다. 팔이 네 개 달린 크리슈나가 모는 전차에 탄 아르주나가 적군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백미다. 결국 아르주나의 화살에 카우라바 진영의 총사령관이자 두 집안의 큰 할아버지 격인 비슈마가 쓰러졌다. 전신에 박힌 화살들이 쓰러진 비슈마의 몸을 침대처럼 떠받치자, 아르주나가 다가와 비슈마의 머리를 받히고 물을 먹여주었다. 화살로 할아버지를 쏘았지만 결코 그를 미워해서가 아니었다. 크샤트리아의 의무인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사촌간의 비극적인 싸움은 18일 동안 지속되었고, 카우라바 형제가 거의 전멸하고서야 끝을 맺었다.

세계로 퍼져나간 ‘위대한 이야기’

<마하바라타>는 기원전 10세기경 크샤트리아 계급의 두 집안이 벌인 실제 전쟁을 소재로 삼았다. 운문 형태로 전해지던 이야기는 서기 400년경 ‘위대한 바라타족의 이야기’라는 뜻을 지닌 <마하바라타>로 칭해졌다. 현재는 총길이가 10만 연(聯)에 달하는 대서사시가 되었는데, 왕의 의무, 카스트 제도, 인간 삶의 4단계 등 인도 문화가 탄생시킨 사상적 담론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에 인도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마하바라타>에 있는 것은 이 세상에도 있고, <마하바라타>에 없는 것은 이 세상에도 없다”라고. 앙코르와트를 방문하려면 부디 <마하바라타>를 비롯한 인도 신화를 읽고 가시길. 그래야 회랑을 걸을 때 신과 영웅들이 들려주는 위대한 이야기가 귓가에 들려올 테니까.

- 사원을 둘러싼 부조가 새겨진 회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