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교한 보름달 밤이었다.
장독대 한 모퉁이에서 키꺽다리 접시꽃 끄트머리는 달빛에 젖어
마지막 씨앗을 소리 없이 떨어뜨리고 있었다. 작은 남새밭을
거느린 담벼락과 장독대 구석구석에서 비집고 나오는 귀뚜라미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히는데 어디선가 지렁이는 또도르르
또도르르 반주를 넣었다. 장독들을 타고 넘쳐흐른 달빛은 마당
가득히 차 있었다. 마루를 쓰다듬던 휘영청 밝은 달이 문지방을
넘어 방 안까지 기웃거리니 굳이 희미한 전등을 켤 필요가 없었다.
마루에서는 소년의 아버지가 양반다리를 하고 겨울과 내년 농사에
쓸 새끼줄을 꼬고 있었다. 오른쪽 무릎 가까이 놓인 사기대접의
물을 이따금 머금었다가 묶음을 풀어놓은 볏짚에 푸푸 뿜어가면서.
꼬아진 새끼줄을 허벅지 아래로 연신 당겨내어 엉덩이 뒤에
차곡차곡 서려두는데 손놀림이 빨랐다.
소년은 문지방에 걸터앉은 여동생의 머리를 쥐어박고 있었다.
소년은 그림을 잘 그렸고, 미술용품을 애지중지했다.
“야, 이 가시나야! 허락도 없이 내 빠레뜨(팔레트)하고
에노구(물감)를 학교에 가꼬가 와 니 마음대로 써노? 어응,
가시나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맞기만 하던 계집애가 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바로 그때 소년은 약간 축축하고 까칠한 감촉과 함께
무직한 통증을 뺨과 귀, 목덜미에서 느꼈다. 그와 동시였다.
디딤돌에서 쨍그랑하고 사기대접이 박살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버지가 서려놓은 새끼줄을 움켜쥐고 소년을 후려치는 바람에
사기대접이 나동그라졌던 것이다. 소년은 아픔을 몰랐다. 계집애는
울음을 뚝 그쳤다. 한순간 풀벌레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달빛과 적막뿐이었다. 그 찰나의 시간이 얼마나 길었던지……. 아무
말 없이 숨결만 고르던 아버지는 “주서 버리거라!” 했다.
아버지는 하던 일을 계속했고, 사금파리 조각에서 튕겨 나온
달빛에 눈을 찔린 소년은 날카로운 조각을 줍다 손가락을 벴다.
소년은 피가 흐르는 손가락을 빨았다. 손바닥에 담긴 사금파리,
달빛, 피는 소년의 눈에서 차츰 한 뭉텅이로 흐릿해졌다. 누구를
탓하는 눈물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고향 다녀온 여독과 과음으로 풍을 맞았다. 6년을 고생
고생했고, 병치레로 적지 않은 가산을 축내고 세상을 떴다.
아버지를 묻고 온 날이었다. 염습(殮襲)한 채 관에 누운 모습을
보았을 때, 하관할 때도 울음소리 한 번 내지 않았던, 장성한
소년, 나는 아버지가 꼼짝하지 않고 누워계시던 자리가 텅 비어
너무나도 허전했다. 아니, 어마한 무게의 상실감이 아버지 대신 그
자리에 누워있었다. 나는 무릎 꿇고 앉아 뭐가 막힌 듯이 아픈
목구멍으로 뜨거운 울음을 삼키며 눈물을 떨구다가 엉엉 목을
놓았는데, 그때 달빛을 튕겨내는 사금파리 조각에 가슴을 에고
있음을 알았다. 그 후로 아버지께서 남기신 달빛 사금파리는
강렬하고도 선명하게 살아서 고희를 여러 해 넘기고도 나와
함께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살아갈 것 같다.
일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누이를 만났을 때, 왠지 살갑지 않게
대하는 듯하면 그날 밤, 달빛 쏘아내던 날카로운 사금파리로 나의
마음을 긁으며 매정함을 후회한다.
나는 골초였다. 자식이 어릴 적, 단칸방에서 밤새워 글을 쓰는
날이면 담배를 한 갑 넘게 피웠다. 겨울에 자식들이 옆집으로 놀러
가면 아줌마가 너희들 옷에서 담배 내가 진동한다고 했단다.
자식들이 성에 차지 않는 성적표를 들고 올 때마다 내가 골초였던
탓이라며 달빛 사금파리로 피가 나도록 가슴을 그었다.
아내는 간접흡연 때문에 호흡기가 좋지 않다. 자다가도 휴지에
가래를 뱉어낸다. 캭캭 하는 소리에 잠을 깨게 되면 달빛
사금파리로 심장을 베느라 더 이상 편히 잠들지 못한다.
가족 외의 사람에게 잘못하고도 차마 미안하다, 죄송하다 말하진
않았어도 그 사금파리로 마음을 그으며 아파하고 뉘우친 적이 더러
있었다.